
AI가 일을 더 많이 맡으면 기업은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월급도 함께 늘어날까.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2026년 9월 공개한 연구에서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 2030년 미국 경제 규모는 AI가 없을 때보다 32.4% 크지만, 사람들이 일해서 받는 소득의 총합은 0.5%만 늘어난다.
이 숫자를 처음 보고 비교 기준부터 다시 확인했다. 두 수치 모두 ‘AI가 없었다고 가정한 2030년 미국’과의 차이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경제가 32.4% 성장하고 노동소득이 0.5% 올랐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진은 AI가 발전하고 기업에 도입되는 속도를 달리해 ‘완만한 변화’, ‘상당한 변화’, ‘극단적 변화’를 계산했다. 어느 경우가 현실이 될지 확률은 제시하지 않았다.
경제는 커지는데 노동소득이 그대로인 이유
경제에서 만들어진 소득은 크게 사람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설비·서버 등 자본을 제공한 쪽의 소득으로 나눌 수 있다. 연구의 AI 없는 경우에는 전체 소득의 60%가 노동에 돌아간다. 극단적 AI 시나리오에서는 경제 규모가 커지는 동시에 노동의 비중이 45.2%로 낮아진다.
AI가 없는 2030년 경제 규모를 100으로 기준을 잡고, 노동 몫이 60%라면 노동에 돌아가는 금액은 60이다. 극단적 AI 시나리오에서는 경제 규모가 132.4로 커지지만, 그중 노동 몫은 45.2%다. 계산하면 132.4 × 45.2% ≈ 59.8이다. 전체는 커졌는데 노동에 돌아가는 금액은 원래의 60과 거의 같다.
자본 쪽은 다르다. AI가 없는 경우 40이던 자본 몫은 극단적 시나리오에서 132.4 × 54.8% ≈ 72.6이 된다. 원래의 40보다 약 81% 늘어난 금액이다. 경제가 커진 만큼 월급의 총액도 커질 것 같았는데, 계산에서는 늘어난 몫의 대부분이 자본 쪽으로 갔다.

여기서 노동소득 총액은 한 사람의 월급과 다르다. 취업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모두 더한 금액이다. 어떤 직군의 월급은 내려가고 다른 직군은 올라가도 전체 금액은 비슷하게 남을 수 있다. 실직한 사람이 생기면 취업자 한 명의 평균 임금과 전체 노동소득도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
간호사의 하루에 AI가 들어오면
연구진은 직업을 통째로 없애거나 유지하는 방식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간호사의 하루만 해도 환자를 돌보고, 상태를 기록하고, 퇴원 안내문을 쓰고, 병동 물품을 주문하는 여러 업무로 이루어진다. AI가 각각의 업무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사람에게 남는 일이 달라진다.
| 업무가 바뀌는 방식 | 간호사 업무의 예 | 사람이 하는 일 |
| 거의 그대로 남음 | 환자의 몸을 씻기는 일 | 직접 돌본다 |
| AI가 도움 | 퇴원 안내문 초안 작성 | 내용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설명한다 |
| AI가 업무를 맡음 | 정형화된 기록이나 물품 주문 | 결과를 관리하고 필요한 때 개입한다 |
| 새로운 업무가 생김 | AI가 분류한 환자 상태 검토 | 판단이 적절했는지 확인한다 |
앤트로픽의 업무별 설명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예시는 AI 도입 시 가능한 업무 변화이며, 모든 병원에서 이미 이 방식으로 일한다는 뜻은 아니다.
퇴원 안내문 초안을 AI가 만들고 간호사가 검토한다면 기존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반면 시스템이 물품 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한다면 사람이 담당하던 업무 자체가 줄어든다. 두 경우 모두 ‘AI를 도입했다’고 부를 수 있지만 임금과 고용에 미치는 경로는 다르다. AI가 새 업무를 만들어내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연구는 AI가 할 수 있는 업무의 비중, 그중 현장에서 실제 사용되는 비중, 업무를 얼마나 빠르게 만드는지, 사람의 일을 어디까지 맡는지 등을 따로 설정했다. 출발점으로 잡은 AI 영향 가능 업무 비중 14%는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진의 추정치다. 실제 사용 비중 10%는 기업의 도입률 자료를 참고해 모형에 넣은 값이다. AI의 능력과 실제 사용은 처음부터 같은 숫자가 아니었다.
2030년 세 가지 경우를 나란히 놓으면
도입부에서 언급한대로 연구진은 AI의 능력과 보급 속도 등을 달리해 완만한 변화, 상당한 변화, 극단적 변화의 세 경우를 만들었다. 아래 표에서 증감률은 별도 표시가 없는 한 2030년의 AI 없는 경우 대비다. 이 조건을 붙여야 서로 다른 시나리오의 숫자를 같은 기준에서 읽을 수 있다.
| 2030년 미국 경제 | 완만한 변화 | 상당한 변화 | 극단적 변화 |
| 경제 규모 | +1.6% | +8.3% | +32.4% |
| 사무·전문직 등의 임금 | +0.4% | −0.3% | −11.5% |
| 그 밖의 직군의 임금 | +1.1% | +5.9% | +33.6% |
| 전체 노동소득 | +0.6% | +1.4% | +0.5% |
| 자본소득 | +3.1% | +18.9% | +81.4% |
| 전체 소득 중 노동의 비중 | 59.4% | 56.1% | 45.2% |
| 사무·전문직 등 출신 근로자의 실업률 | 2.9% | 4.5% | 17.9% |
| 전체 근로자의 실업률 |
3.9% | 4.6% | 11.9% |
노동의 비중과 실업률은 증감률이 아니라 각 시나리오에서 계산한 비율이고, ‘사무·전문직 등’에는 관리자·전문직·영업·사무직이 포함된다. ‘그 밖의 직군’은 현장직만 뜻하지 않는다.
상당한 변화의 경우 경제 규모는 8.3% 커지지만 사무·전문직 등의 임금은 거의 제자리다. 극단적 변화에서는 이 직군의 임금이 11.5% 낮아지고 실업률은 17.9%까지 올라간다. 그 밖의 직군에서 임금이 오르는 결과도 함께 나온다. 노동소득 총액 하나만 보면 놓치기 쉬운 직군별 차이다.
표의 17.9%는 미국 전체 실업률이 아니다. 연구에서 AI의 영향을 직접 받는 직군 출신의 실업률이며, 극단적 변화에서 전체 근로자의 실업률은 11.9%로 계산됐다. 미국 성인 1만 980명을 대상으로 한 별도 설문에서는 AI가 여러 일을 해낼 수 있어도 실제 직장에서는 그 능력의 일부만 사용할 것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응답을 모형에 넣어 계산한 결과는 대체로 ‘상당한 변화’와 가까웠지만, 설문이 미래를 확정해 주지는 않는다.
서버와 설비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에 따라
같은 극단적 AI 시나리오에서도 필요한 자본을 얼마나 쉽게 늘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 연구진은 AI의 능력·보급 속도와 업무 자동화 정도 등 극단적 시나리오의 설정은 그대로 두고, 자본을 공급하기 쉬운 정도만 바꿔 다시 계산한 것이다.
아래 표의 ‘연구의 기본 가정’은 자본을 쓰는 대가가 1% 오를 때 공급량이 약 3% 늘어난다고 놓은 원래 설정이고, 이때 경제 규모 +32.4%, 취업자 평균 임금 +9.7%가 나온다. 여기서 자본은 데이터센터 건물만이 아니라 서버와 설비를 포함한 경제 전반의 자본이다.
| 극단적 변화에서 자본 공급을 늘리기 쉬운 정도 | 어려움 | 연구의 기본 가정 | 비교적 쉬움 | 제약이 없다고 가정 |
| 2030년 경제 규모 | +21.3% | +32.4% | +37.2% | +43.3% |
| 취업자 평균 임금 | −9.2% | +9.7% | +18.3% | +30.1% |
모두 같은 해의 AI 없는 경우 대비 값이다. 마지막 열의 ‘제약이 없다’는 현실에서 무제한 공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모형의 가정이다.
표를 보니 전체 노동소득 +0.5%와 취업자 평균 임금 +9.7%가 왜 동시에 나오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앞의 숫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소득 감소까지 반영한 전체 금액이고, 뒤의 숫자는 취업자 임금의 평균이다. 비교 대상과 계산 단위가 다르다. 자본 공급 가정이 바뀌면 그 평균 임금마저 −9.2%에서 +30.1%까지 벌어진다.
AI 사용이 늘어났는데 필요한 설비가 부족하면 설비를 쓰는 대가가 높아진다. 그러면 늘어난 생산의 이익이 임금보다 자본을 제공한 쪽으로 더 많이 갈 수 있다. 이 표를 ‘데이터센터를 몇 년 만에 짓느냐’의 결과로 읽으면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진다. 전력과 장비, 건설뿐 아니라 자본 투자 전체가 얼마나 원활한지가 이 가정에 걸려 있다.
임금을 지키면 일자리도 지켜질까
연구는 사무·전문직 등의 임금이 변화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도 바꿔 봤다. 극단적 AI 시나리오에서 임금이 빠르게 조정되면 AI 없는 경우에 비해 임금은 크게 낮아지는 대신 실업률은 낮게 나온다. 임금이 천천히 조정되면 임금 하락폭은 작아지지만 실업률은 높아진다. 같은 기술 충격에도 고용시장의 반응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달라지는 셈이다.

그림의 양끝은 뚜렷하다. 임금이 빠르게 조정되는 가정에서는 임금이 42.2% 낮고 실업률은 2.6%다. 매우 천천히 조정되는 가정에서는 임금이 2.8% 높게 남지만 실업률은 24.0%다. 당연히 이 숫자를 한국의 해고 제도에 바로 대입할 수는 없고, 연구진이 미국 경제 모형의 임금 조정 속도를 달리해 본 결과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다른 직종으로 옮기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개발자가 전기기사가 되거나 관리자가 간호사가 되려면 새 기술을 익히고 채용 자리도 찾아야 한다. 비슷한 일을 하던 사람이 한꺼번에 이동하면 자리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연구에서 재취업이 느려질수록 실업이 오래 이어지는 이유다.
시나리오가 담지 못한 변수
위에서 본 것 같이 이 모형은 사람을 크게 두 직군으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같은 직군 안에서 나이, 경력, 지역에 따라 전직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충분히 담지 못한다. 오랫동안 쌓아 온 전문성을 잃은 사람이 새 직업에서 실제로 얼마를 받을지도 단순화했다.
| 계산에 충분히 담기지 않은 것 | 결과를 읽을 때 조심할 점 |
| 현장 업무의 로봇 자동화 | 그 밖의 직군 임금 상승이 오래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
| 경기침체와 소비 감소 | 실직이 소비를 줄이고 고용에 다시 영향을 주는 경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
| 정부 정책 | 실업자 지원이나 세금 변경의 효과를 계산한 결과가 아니다 |
| 사람마다 다른 사정 | 같은 직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이동하고 소득을 얻는다고 가정한다 |
세 시나리오는 2026년의 같은 출발값에서 시작하며, 연구에서는 2027년 이후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지금까지의 변화가 크지 않다고 해서 2030년에도 그럴 것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지와 기업이 실제로 맡기는 일이 늘어나는지,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다른 일을 찾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투자자와 AI 성장의 의미
논문의 수치는 미국 경제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한국의 산업 구성과 고용 형태는 다르므로 미국의 실업률 17.9%를 한국의 전망치로 가져올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근로자의 임금이 더 오를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한국에 적용하려면 국내 기업의 AI 사용과 채용 변화부터 따로 확인해야 한다.
투자 쪽에서는 자본소득의 증가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모형의 자본소득 +81.4%는 AI 관련 주식의 예상 수익률이 아니다. 서버와 설비에 쓴 돈, 기업 간 경쟁, 늘어난 매출 중 실제 이익으로 남는 금액, 이미 높아진 주가를 함께 봐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도 주식을 산 사람이 항상 그만큼 벌지는 않는다.
극단 시나리오에서 연구진은 사무·전문직 등의 소득 손실을 보전할 만큼 경제 전체의 이익이 클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에 필요한 소득 이전 규모는 GDP의 약 9%로 추정했고, 그런 규모의 대응이 저절로 일어난다고 보지도 않았다. AI가 만들어내는 성장과 그 성장분을 임금·일자리·자본소득으로 나누는 과정은 각각 확인해야 한다. 도입부의 ‘경제 +32.4%, 노동소득 +0.5%’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 간격이었다.
참고 자료: The Anthropic Institute Working Paper No. 2026-02, 2026년 9월; Anthropic, 「Scenarios for our Economic Future」, Anton Korinek 외, 「Economic Scenarios for Transformative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