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기간과 위험감내도로 나에게 맞는 자산배분 비율 정하기
주식 60%, 채권 40%는 자산배분을 공부하다 보면 자주 만나는 조합이다. 주식으로 성장에 참여하면서 채권으로 변동성을 낮추겠다는 구조라 이해하기 쉽고, 실제 포트폴리오를 설계할 때 출발점으로 삼기도 좋다.
그렇다고 60대 40이 모든 투자자에게 적합한 비율이라는 뜻은 아니다.
30대 직장인이 20년 이상 투자할 돈과 은퇴를 앞둔 사람이 몇 년 안에 생활비로 써야 할 돈은 같은 방식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같은 사람이라도 연금계좌와 2년 뒤 주택 구입에 사용할 자금의 적정 주식 비중은 달라야 한다.
자산배분에서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주식이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이 돈을 언제 써야 하고, 그때까지 얼마나 흔들려도 버틸 수 있는가이다.
투자기간이 짧을수록 회복할 시간이 줄어든다
주식은 가격이 크게 떨어져도 시간이 충분하다면 회복을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투자기간이 짧으면 같은 하락도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20년 뒤 사용할 노후자금이 있다고 해보자. 중간에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하더라도 당장 돈을 꺼낼 필요가 없다면 기다릴 시간이 있다. 정기적인 소득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면 낮아진 가격에서 추가 투자할 수도 있다.
반대로 2년 뒤 반드시 사용할 주택자금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집을 사야 하는 시점에 주식시장이 30% 떨어져 있다고 해서 “회복할 때까지 몇 년 더 기다리자”고 하기 어렵다.
이 경우 문제는 투자자의 담력이 아니다. 필요한 시점이 정해져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이다.
그래서 자산배분에서는 돈의 사용 시점을 먼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당장 필요한 생활비와 비상자금, 몇 년 안에 사용할 자금, 10년 이상 투자할 장기자금은 같은 계좌에 있더라도 실제 역할은 다르다. 특히 사용 시점이 가까운 돈일수록 큰 가격 변동에 노출시키기 어렵다.
장기투자가 위험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손실 이후 회복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늘려준다.
견딜 수 있는 손실과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은 다르다
위험을 생각할 때 흔히 “나는 주가가 30% 떨어져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심리적인 위험감내도(Risk Tolerance)에 가깝다.
그런데 실제 투자에서는 또 하나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위험감수능력(Risk Capacity)이다.
두 가지는 같지 않다.
주가가 40% 하락해도 심리적으로 전혀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나 3년 뒤 자녀 학자금으로 사용할 돈까지 주식에 투자했다면 경제적으로는 그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반대 상황도 있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고 장기간 사용할 계획이 없는 자금이라 재무적으로는 상당한 변동을 견딜 수 있지만, 주가가 10%만 떨어져도 불안해서 모두 매도하는 사람이라면 높은 주식 비중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자산배분은 두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가. 그리고 재무적으로 기다릴 수 있는가.
둘 가운데 더 낮은 쪽이 실제 투자위험의 한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식 비중이 달라지면 같은 시장 충격도 다르게 느껴진다
배분비율에 따라 실제 손실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단순한 숫자로 생각해보자.
주식시장이 30% 하락하고 같은 기간 채권이 5% 상승했다고 가정한다. 실제 시장이 항상 이렇게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며 자산배분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예시다.
주식 80%, 채권 20%라면 포트폴리오 손실은 약 23%가 된다.
주식 60%, 채권 40%라면 약 16%, 주식 40%, 채권 60%라면 약 9%로 줄어든다.

주식 -30%, 채권 +5%를 가정한 단순 계산이다. 미래 수익률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여기서 주식 비중이 낮은 포트폴리오가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반대편도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장기간 크게 상승한다면 주식 80% 포트폴리오가 40% 포트폴리오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위험을 낮추면 기대수익도 함께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자산배분은 가장 손실이 작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안에서 필요한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는 과정에 가깝다.
비율을 정할 때는 세 가지부터 생각해본다
자신에게 맞는 비율을 찾을 때 처음부터 주식 57%, 채권 28%, 금 10%, 현금 5%처럼 정교한 숫자를 만들 필요는 없다.
먼저 세 가지 질문에서 출발하는 편이 낫다.
첫 번째는 이 돈을 언제 사용할 것인가이다. 사용 시점이 가까울수록 큰 변동에 노출시키기 어렵고, 투자기간이 길수록 주식과 같은 성장자산을 활용할 여지가 커진다.
두 번째는 시장 하락 중에도 소득이 계속 들어오는가이다. 안정적인 급여나 사업소득이 있다면 시장이 하락해도 투자자산을 팔지 않고 버틸 여지가 크다. 반면 은퇴 후 투자자산에서 생활비를 계속 꺼내야 한다면 같은 하락도 훨씬 큰 부담이 된다.
세 번째는 어느 정도 손실이 오면 실제 행동이 달라질 것인가이다.
10% 하락은 괜찮지만 20%가 되면 잠을 이루기 어렵고, 30%에서는 전량 매도할 것 같다면 주식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를 선택해 놓고 “장기투자니까 버틴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과거 큰 하락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떠올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 경험은 설문지에서 답하는 위험성향보다 자신의 행동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나이만으로 주식 비중을 정하면 부족하다
예전부터 100 - 나이 = 주식 비중처럼 간단한 방법이 자산배분의 예로 사용되곤 했다. 40세라면 주식 60%, 나머지를 채권에 투자하는 식이다.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편하지만 실제 포트폴리오를 이것만으로 결정하기에는 빠진 변수가 많다.
같은 50세라도 앞으로 15년 이상 근무할 사람과 이미 은퇴한 사람은 상황이 다르다. 부동산과 현금자산이 충분한 사람과 금융자산 대부분이 투자계좌에 들어 있는 사람도 다르다. 공적연금이나 퇴직연금에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발생하는지에 따라서도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은 달라진다.
나이는 투자기간을 짐작하는 하나의 정보일 뿐이다.
실제 자산배분에서는 나이보다 돈의 사용 시점과 전체 재무구조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 주식 80%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비율이 나에게도 적합하다는 보장은 없다. 소득, 부채, 부동산, 연금, 투자기간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비율을 찾을 필요는 없다
자산배분을 공부하다 보면 가장 효율적인 비율을 계산하고 싶어진다. 과거 데이터를 이용해 수익률과 변동성을 비교하면 어떤 조합이 가장 좋았는지도 계산할 수 있다.
문제는 미래의 시장 환경이 과거와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55대 45가 60대 40보다 정확히 더 좋은지까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자산배분이 오히려 복잡해진다. 실제 투자에서는 몇 %포인트의 차이보다 정한 비율을 큰 시장 변동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넓은 범위로 생각해도 된다.
성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긴 투자기간과 높은 손실 감내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주식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가까운 시기에 사용할 돈이 많거나 큰 변동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안정적인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 비율은 평생 고정할 필요도 없다.
투자기간이 짧아지고, 은퇴가 가까워지고, 소득과 지출 구조가 바뀌면 자산배분 역시 조정할 수 있다.
자산배분의 숫자는 투자자의 삶과 떨어져 있는 공식이 아니다. 내 돈을 언제 쓰고, 얼마만큼의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지를 숫자로 표현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비율을 잘 정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주식 60%, 채권 40%로 시작하더라도 주식이 크게 오르면 어느 순간 70대 30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보다 위험한 포트폴리오로 바뀐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리밸런싱이다.
처음 정한 자산배분은 시장이 움직이면서 계속 변한다. 다음 글에서는 리밸런싱이 단순한 고점 매도가 아닌 이유와 언제, 어느 정도 비중을 다시 맞추는 것이 현실적인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