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와 자산배분은 무엇이 다른가
투자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종목 수가 늘어난다. 처음에는 몇 개의 개별주로 시작했다가 S&P500 ETF, 나스닥100 ETF, 반도체 ETF까지 추가한다. 계좌에 열 종목, 스무 종목이 들어 있으면 꽤 잘 분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목의 개수와 실제 위험의 개수는 같지 않다.
예를 들어 나스닥100 ETF와 AI ETF, 반도체 ETF를 각각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상품 이름은 다르지만 구성종목을 열어보면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브로드컴 같은 기업이 여러 ETF에 반복해서 들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같은 기업의 개별주까지 가지고 있다면 실제 투자 비중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커진다.
ETF 세 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 돈이 실제로 어디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종목을 나누는 것과 위험을 나누는 것은 다르다
삼성전자 한 종목에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삼성전자, 현대차, KB금융, 네이버처럼 여러 기업에 나눠 투자하면 한 기업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받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분산투자다.
국가와 산업까지 나누면 분산 범위는 더 넓어진다. 한국 주식만 보유하는 대신 미국이나 유럽 주식을 함께 보유하고, 반도체뿐 아니라 금융·헬스케어·산업재 등으로 투자 대상을 넓힐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해도 대부분이 주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나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기업과 국가가 달라도 주식시장은 동시에 하락할 수 있다. 평소에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던 종목도 시장 전체가 위험을 피하려는 상황에서는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투자에서는 두 가지 분산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종목 분산은 주식 안에서 기업·산업·국가를 나누는 것이다.
자산배분은 주식 자체의 위험까지 나누기 위해 채권이나 현금, 금처럼 성격이 다른 자산을 함께 보유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좋은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서로 다른 단계의 분산이다.

위쪽의 반도체 ETF, AI ETF, 나스닥 ETF는 상품은 달라도 상당 부분 같은 주식시장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반면 자산배분에서는 주식 외에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자산을 함께 보유해 위험의 원천 자체를 나눈다.
ETF가 많다고 포트폴리오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ETF는 한 상품으로 여러 종목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분산투자에 매우 유용하다. 문제는 ETF를 여러 개 추가하면서 실제 구성종목을 확인하지 않을 때 생긴다.
가령 미국 대형 기술주가 많이 포함된 ETF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AI ETF와 반도체 ETF를 추가했다고 해보자. 계좌에는 세 개의 ETF가 있지만 각 ETF의 상위 종목이 반복된다면 특정 기술주에 대한 실제 노출은 계속 커진다.
이런 현상을 중복 보유(Overlap) 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아주 단순하게 다음과 같은 포트폴리오가 있다고 해보자.
- ETF A에서 엔비디아 비중 8%
- ETF B에서 엔비디아 비중 15%
- ETF C에서 엔비디아 비중 20%
각 ETF에 같은 금액을 투자했다면 내 포트폴리오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실제 비중은 세 ETF의 영향을 모두 합쳐서 봐야 한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ETF 세 개에 투자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기업에 반복해서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같은 개별주를 가지고 있으면서 반도체 ETF와 AI ETF까지 함께 보유하면 각 상품의 이름은 달라도 반도체와 AI 경기라는 비슷한 위험요인에 자산이 몰릴 수 있다.
따라서 포트폴리오를 볼 때는 상품 이름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내 포트폴리오의 쏠림은 세 단계로 보면 된다
종목 수가 많아지면 포트폴리오 전체를 한눈에 보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는 세 단계 정도로 나누어 보면 생각보다 단순하게 정리된다.
먼저 자산 종류를 본다.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이 몇 %이고 채권이나 현금 같은 다른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한다.
다음에는 주식 안에서 국가와 산업 비중을 본다. 미국 주식이 지나치게 많지는 않은지, 기술주나 반도체에 자산이 몰려 있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ETF와 개별주를 합쳐 실제 종목 중복을 확인한다. 개별주로 보유한 기업이 ETF 안에도 많이 포함돼 있다면 두 비중을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하다.
예를 들어 S&P500 ETF 안에 들어 있는 엔비디아를 보유하면서 엔비디아 개별주와 반도체 ETF까지 추가했다면 ‘ETF + 개별주 + 산업 ETF’를 모두 합친 실제 엔비디아 노출을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단순히 종목이 몇 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종목이 30개여도 같은 시장과 같은 산업에 몰려 있다면 집중된 포트폴리오일 수 있고, 상품 수는 적어도 서로 다른 위험에 나누어 투자하고 있다면 오히려 분산 정도가 높을 수 있다.
포트폴리오를 볼 때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다.
“내가 가진 자산 중 비슷한 이유로 같이 떨어질 수 있는 것들을 한데 묶으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을 기준으로 보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집중 위험이 드러난다.
분산투자는 많은 종목을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그 자산들이 어떤 위험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종목과 산업을 충분히 나누었더라도 주식이라는 자산 전체가 가진 위험은 남는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는 주식 밖으로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
주식은 기업 성장에 참여하고, 채권과 현금, 금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역할을 한다. 다음 글에서는 각 자산이 어떤 상황에서 강하고 약한지 살펴보고, 서로 다른 자산을 함께 보유하는 이유를 알아본다.